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호성 살인 사건 (문단 편집) === 종결 === 공개수배된 지 몇 시간 만인 2008년 3월 10일 오후 3시 8분, [[서울특별시]] [[서초구]] [[반포동]] [[반포대교]] 남단[*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650번지. 이 부지는 1년 후 공사가 시작되어 [[세빛섬]]이 된다.]에서 400미터 떨어진 [[한강]] 한가운데에서 이호성의 시신이 발견되었다. 향년 40세. 처음에는 신원 미상이었으나 나중에 [[지문]] 감식을 통해 이호성으로 밝혀졌다. [[투신자살]]로 추정되며 [[국립과학수사연구소]]는 사망 원인은 [[익사]]라고 발표했다. 이송단의 한 요원이 언급하길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76&aid=0001943519&viewType=pc|이호성의 시신은 마치 한이 맺힌 듯 했다고 한다.]] 2008년 3월 10일 저녁 11시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새로운 제보가 들어왔다. 이호성으로 보이는 사람의 부탁으로 전남 화순군 동면 [[공동묘지]] 근처에 [[비석]]을 세울 구덩이를 파 줬다는 제보였다. 경찰이 즉시 현장으로 가서 그 구덩이를 파서 확인한 결과 구덩이에서는 모녀가 사라진 날 [[이호성]]이 아파트 1층에서 가지고 나갔던 4개의 가방이 발견되었고 가방 안에는 한 가방에 한 구씩 시체가 두꺼운 비닐에 싸여 들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. 엄마와 둘째, 셋째딸은 평상복 차림, 큰딸은 외출복 차림이었다. 일각에서 이호성이 피해자들을 죽이기 전에 강간하였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.[* 피해자들의 몸에서 이호성의 [[정액(체액)|정액]]이 검출되었다는 말도 떠돌았지만 역시 거짓이다.] 2008년 3월 13일, 서울 [[삼성동(강남구)|삼성동]] [[서울의료원]] [[장례식]]장에서 피해자들의 장례식이 치러졌다. 피해자의 친외가 친척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애통해 했지만[* 피해자 친척의 말에 따르면 피해자는 '법 없이도 살 사람'이라고 했는데 그만큼 인망이 있는 사람이었음을 의미한다. 딸들을 끔찍이 아꼈다고 한다.] 사람을 4명이나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겁한 방법으로 최후의 도피를 한 가해자인 이호성의 빈소에는 조문객이 '''단 한 사람도 오지 않았으며''' 소수의 유족들도 기자들의 방문을 애써 막고 작은 방으로 가서 자기들끼리 조촐하게 장례를 치렀다. 심지어 당일 장례식장의 장례 명단에서도 이호성의 이름을 볼 수 없었는데 이호성의 유족들과 장례식장 관계자들이 재빨리 끝내려고 고의로 이름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. 이렇게 그는 현역 시절의 화려한 명성과는 전혀 다르게 자신의 동료와 팬들에게 외면받은 채로 초라한 장례식[* 심지어 단상에 위패와 영정만 올려두고 아무 것도 없이 장례를 치뤘다.]을 맞이한 뒤 [[광주영락공원]]에서 화장되어 '''[[화장(장례)|한 줌의 재로 사라지게 되었다.]]''' 그는 자살하기 전 [[편지]] 형식으로 몇 가지 [[유서]]를 남겼는데 형에게 보낸 유서에는 "어머니와 형, 아내, 아이 등에 대한 미안한 감정을 밝히고 특히 아들을 잘 챙겨달라"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. 지인(광주시 야구협회장)에게 보낸 편지에는 "야구협회장을 축하하고 옛 시절이 행복했다. 하늘나라로 먼저 가 있을게"라고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을 적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